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배우 이순재 별세 소식이 전해지며 많은 이들이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향년 91세. 한국 드라마와 연극, 영화 발전의 중심에 서 있었던 그의 존재는 한 개인의 삶을 넘어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와도 같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故) 이순재 배우가 남긴 발자취를 차분히 돌아보며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예술가의 뿌리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조부모를 따라 서울에 정착했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경험하며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그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문을 이어가던 중,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을 보고 연기의 길을 결심했습니다. 그의 선택은 훗날 한국 연기계의 거대한 이정표로 남게 됩니다.

■ 연극으로 시작된 69년의 배우 인생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활동하며 한국 방송의 역사와 함께 성장했습니다. 이순재 별세 소식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그가 하나의 장르에 머물지 않고 연극·영화·드라마를 넘나들며 ‘평생 현역’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생전에 140편이 넘는 드라마에 출연했고, 단역까지 포함하면 셀 수 없는 작품 속에서 국민의 일상과 함께했습니다. 한 달 30편을 촬영하던 시기도 있었다는 점은 그의 열정과 책임감을 상징하는 일화로 남습니다.
https://youtu.be/_PpQ17XfgGQ
■ ‘대발이 아버지’부터 ‘야동 순재’까지… 세대와 장르를 초월한 국민 캐릭터 탄생
1991년~1992년 방영된 ‘사랑이 뭐길래’는 65%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 드라마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탄생한 ‘대발이 아버지’ 캐릭터는 한국 사회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서 독보적인 공감과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이후 그는 사극 전성시대를 대표하는 얼굴이 됩니다.
- 허준
- 상도
- 이산
묵직함과 카리스마가 공존하는 그의 연기 스타일은 사극의 깊이를 더하며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 70대에도 변신을 멈추지 않은 진정한 ‘평생 현역’
70대에 접어들며 그는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보여준 코믹 연기는 그동안의 근엄한 이미지를 완전히 비틀며 세대 간의 벽까지 허물었습니다. 이 시기에 탄생한 ‘야동 순재’ 캐릭터는 아이들마저 그의 팬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나이를 잊은 열정과 강철 체력을 보여주며 ‘직진 순재’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 무대가 고향이었던 배우… 80대에도 연극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다
그가 생전에 가장 소중히 여긴 무대는 연극이었습니다.
80대에 다시 연극 무대에 올라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등에서 폭발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리어왕’ 200분 대사를 완벽히 소화한 일화는 후배 배우들이 두고두고 언급하는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2023년에는 연출자로 나서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대극장 무대에 올리며 새로운 도전을 이뤄냈습니다.
■ 정치, 교육… 연기를 넘어 사회와 후학을 향한 헌신
그의 삶은 연기에서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여러 정책 활동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말년까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며 대한민국 연기 교육 발전에도 이바지했습니다. 이순재 별세 소식이 더 큰 안타까움을 주는 이유는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배우의 본분’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 순간까지 현역이었던 대배우
지난해에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KBS 드라마 ‘개소리’에 출연하며 연기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건강 문제로 잠시 휴식에 들어간 후, 2024년 12월 25일 그의 마지막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고인의 빈자리는 크고도 깊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과 철학, 그리고 ‘배우로서 살아가는 태도’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